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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곳에 머물며 땅을 두루 살피는 힐링여행

by 그냥정보주는사람 2022. 10. 6.

나무와 기억의 조각들

나무는 우리에게 많은 도움을 주는 이로운 존재다. 여름엔 열매와 시원한 그늘을 베풀고, 겨울에는 땔감을 주며 든든한 바람막이가 되어 준다. 나무를 지그시 올려다볼 때 인간은 일순간 고요해진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에 대한 고마움과 자신보다 몇 배 더 오래 산 생명에 대한 경외심을 느끼는 것이다. 나무와 인간은 '땅 없이 살 수 없다'는 점에서 같다. 적당한 온도와 습도를 통해 성장하는 모습 또한 서로 크게 다르지 않다. 사연 없는 삶은 없다고 생각한다. 오랜 시간 세상을 굽어보았을 나무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보자.

 

왕버들 나무 사진
나무와 함께하는 힐링 여행 어떤가요?

 

1. 이루지 못한 사랑을 위로하는 청송 관리 왕버들

임진왜란이 발발하기 직전 한 총각이 이웃 마을 처녀에게 반하게 된다. 처녀를 마음 깊이 사랑하게 된 총각은 처녀의 아버지 대신 의병이 되기로 결심한다. 전쟁터로 떠나기 전날 밤, 총각은 버드나무 한 그루를 심고 처녀를 불러 사랑의 서약을 맺는다. 사랑을 위해 목숨도 불사하는 총각에게 감동한 처녀는 총각을 기다리며 매일 버드나무 곁을 지켰다.

 

드디어 전쟁이 끝나고 전쟁터에 나갔던 이들이 하나 둘 돌아왔지만 처녀가 기다리던 총각은 끝내 돌아오지 않았다. 그의 죽음을 직감한 처녀는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버드나무에 목을 매 자결한다. 그리고 얼마 후, 버드나무 맞은편에는 소나무가 하나가 싹텼다. 마을 사람들은 그것을 처녀의 영혼으로 생각하고 두 나무를 약속의 상징으로 여겼다. 소나무는 현재 고사했지만 사람들은 그곳에 비석을 세워 여전히 두 사람의 사랑을 기억하고 있다.

 

애달픈 설화를 간직한 왕버들은 아직도 그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본래 지금보다 2배는 굵게 자란 나무였으나 벌집을 꺼내기 위해 수술한 이후 서쪽 가지가 썩어 크기가 줄었다. 비록 나무의 크기는 작아졌지만 그에 담긴 사연은 여전히 잔잔한 감동을 주고 있다.

 

2. 아낌없이 주는 나무 예천 석송령

예천군 감천면에서 석송령 씨를 모르는 사람이 없다. 처 번째 이유는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원하는 훌륭한 성품을 지녔기 때문이고 두 번째 이유는 그가 사람이 아닌 나무이기 때문이다.

 

석송령은 약 600년 전 풍기 지방에 큰 홍수가 났을 때, 석간천을 따라 떠내려 오던 소나무를 지나가던 사람이 건져 심은 것으로 알려진다. 현재 나이는 600세 정도로 추정되며, 둘레는 4.2m로 웬만한 성인 3명이 모여야 겨우 끌어안을 수 있는 넓이다. 보통 가지가 위로 뻗는 나무들과 달리 석송령의 가지는 옆으로 뻗어 10,000m²의 큰 그늘을 만든다. 크기만큼이나 가지의 무게도 대단해서 그를 지탱하기 위한 돌기둥이 곳곳에 세워져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석송령의 탄생에는 자식을 기다리던 슬픈 노인의 사연이 담겨있다. 마을의 큰 지주였던 노인은 한평생 아들 이수목 씨를 찾으려 했다. 그러나 생을 마감하는 순간까지 자식을 찾을 수 없었고 결국 마을의 나무에게 '석송령'이라는 이름을 붙여 자신의 재산을 상속하였다. 석평마을의 '영험 있는 소나무'라는 뜻을 가진 석송령은 토지 6,600m² 와 등기를 가진 최초의 나무가 됐다. 석송령이 가진 땅은 공동화장실과 노인회관 등 마을 공공시설에 임대했다. 매달 여기서 나오는 임대소득이 석송령의 통장에 차곡차곡 저장되는데, 이 돈으로 벌써 30여 명의 학생을 졸업시켰다. 마을에서는 해마다 정월 대보름에 석송령 앞에서 마을의 평화를 비는 제사를 지내며 감사함을 표한다고 한다.

 

3. 한국의 실크로드를 이끈 상주 두곡리 뽕나무

상주시 은척면 두곡리 마을 끝자락 농가 뒤편에는 아주 특별한 뽕나무가 있다. 높이 10m, 가슴 높이 둘레가 3.93m나 된다. 300년의 세월을 견딘 강인함이 느껴지는 뽕나무는 올해 2월 '은척면 뽕나무'에서 '상주 두곡리 뽕나무'로 개명함과 동시에 경상북도 기념물 제1호에서 천연기념물 제559호로 승격되었다. 문화재가 많기로 소문난 경상북도에서 무려 제1호 기념물이 될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인지 알아보겠다.

 

이야기는 세월을 거슬러 유럽의 '실크로드'에 닿는다. 그 당시 아시아와 유럽의 가장 중요한 무역 수단은 단연 비단이었다. 하지만 유럽인들의 엄청난 비단 사랑 덕분에 중국에서도 수요를 감당하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이에 중국은 주변 아시아국들에 양잠업을 권유하게 되고 수지가 맞는 산업이라고 판단한 우리나라는 적극적으로 뛰어든다. 그때 국내에서 양잠업이 가장 발달한 곳이 바로 '상주'다.

 

예로부터 상주는 쌀, 곶감, 누에의 생산이 많아 삼백의 고장이라고 불려 왔다. 상주의 뽕잎을 먹고 자란 누에의 품질은 뛰어났고 이는 상주의 부흥을 가져왔다. 두곡리 뽕나무는 상주의 오랜 양잠 역사와 전통을 입증해주는 기념물이니 역사적, 민속적 가치를 값으로 매길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