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 장인 석노기를 소개합니다.
2018년 여름, 세계 최대 온라인 쇼핑몰 아마존의 원예 부문 TOP10에 익숙한 물건이 등장했다. 우리나라 전통 농기구인 호미다. 전 세계 원예사의 찬사를 받은 이 호미는 영주 휴천동에서 영주 대장간을 운영하는 석노기 장인의 손에서 탄생했다. 그해 석노기 장인은 '경상북도 최고장인', 중소벤처기업부 '백년소상공인'으로 선정되는 영예를 누렸다.
영주 명물, '그 호미'의 탄생
대장간의 문을 열자 세찬 망치질 소리가 귓전을 울린다. 작업실 가장 안쪽, 커다란 화로 앞 석노기 장인이 익숙한 손길로 호미 날을 두드린다. 가정 형편이 어려웠던 석노기 장인은 초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대장장이의 길에 들어섰다. 말 그대로 '먹고살기' 위해 시작한 일이었지만, 그의 남다른 끈기는 여린 소년의 몸으로 장정들도 견디기 힘든 일을 버티게 해 줬다. 덕분에 그는 20대 초반에 지금의 영주 대장간을 개업할 수 있었다.
1980년, 값싼 중국산 제품이 대거 유입되며 농기구 제조업도 휘청였다. 석노기 장인 역시 자신이 나아갈 길에 대해 깊이 고민했다. "가격 경쟁에 휩쓸려서는 살아남을 수 없겠다는 판단이 섰죠. 그래서 품질에 승부를 걸었습니다. 남들보다 비싸게 파는 대신 최고를 만들자고 다짐한 거예요."
그는 마모가 적고 사용하기 편리한 호미를 만드는 데 몰두했다. 점점 '영주 호미로 밭일하면 손목이 안 아프다'는 소문이 돌며 그의 제품을 찾는 이들이 많아졌다. "젊었을 적 일인데, 납품하러 철물점에 갔더니 사장님이 없는 거예요. 한참 있다 나타나시길래 '장사하셔야지 다른 데 가시면 어떡하냐'했더니 사장님이 괜찮대요. 이 영주 호미만 있으면 가게 문을 안 열어도 손님이 온다고." 영주 대장간의 호미는 크기, 용도에 따라 8천 원 전후의 가격으로 판매되는데 이는 수입품보다 4배 정도 비싼 가격이다. 가격에 의구심을 갖던 사람도 실제 사용해보면 압도적인 품질을 인정하게 된다. 호미를 처음 쥐었을 때, 드디어 '내 물건'을 찾았다며 기뻐하는 이가 많은 것도 그 때문이다.
'나만의 기술'을 중심으로
호미의 재료는 전부 국산이며 철근 같은 무른 쇠가 아닌 자동차를 만드는 고강도 판 스프링을 쓴다. 재료를 불에 달궈 수천 번 망치질하고, 날을 가는 등 여러 공정을 거친 뒤 손잡이를 끼워 완성한다.
보통은 각각의 과정마다 다른 기술자가 투입되지만 석노기 장인은 전 과정을 혼자 소화한다. "나만의 기술을 가졌다는 사실이 대장장이로 거듭나는 중심이 됐습니다. 호미처럼 단단한 중심이 있었기에 흔들리지 않았지요."
영주 대장간의 호미가 국제적으로 '대박'을 친 후, 2년 동안 5천 자루 이상이 수출됐다. 지난해에는 호주에서 수주를 받았고, 지금은 곧이어 들어온 2차 주문량을 준비하고 있다. 이제는 10여 개 국가에 수출하고 있지만 석노기 장인은 여전히 '초심'을 잃지 않으려 노력한다.
55년간 한길을 걸어온 석노기 장인에게 가장 중요한 가치는 '신뢰'다. 불량품은 절대 용납되지 않는다. "만 개 중에 하나 불량이라 쳐도 나한테는 '만에 하나' 확률이지만, 불량품을 받은 고객한테는 100% 확률입니다. 그러니 하나라도 잘못돼서는 안 되죠. 혹여 하자가 있다면 곧장 A/S를 해드 리거나 교환해 드립니다." 수천수만 번을 쥐어보며 만들었다는 밤나무 손잡이에 자부심을 담은 '석노기'라는 이름 석 자가 선명히 새겨져 있었다.
하루하루가 모여 만든 오늘
석노기 장인은 다음 세대에도 대장장이라는 직업이 이어지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대장간 문화'의 부흥을 위해 석노기 장인은 색다른 아이디어를 제안했다. "시민들의 대장간을 찾아 견학이나 만들기 체험을 해보는 겁니다. 그렇게 많은 분께 친근하게 다가가다 보면 대장장이의 길로 유입되는 젊은이도 생기지 않을까요?" 덧붙여 석노기 장인은 대장장이의 길을 고민하는 이에게 조언을 전했다. "하루하루를 모아 평생을 간다는 마음이어야 합니다. 평생 이 일을 할 수 있는지 잘 고민해보고 확신이 선다면 끝까지 가세요. 무척 고되지만, 자신만의 기술을 잘 갈고닦는다면 분명한 경쟁력이 있습니다."
긴 세월 동안 힘든 순간은 없었냐는 질문에 그는 '해마다 가장 더운 날'을 꼽는다. 40도를 웃도는 날씨에 종일 이글대는 화로를 마주하면 몸속까지 화끈대는 느낌이다. "그래도 수십 번의 여름을 보내니 이런 날이 왔네요. 과거 땀 흘리고 버텨온 만큼 지금 더욱 뜻깊습니다." 소금을 찍어 먹으며 뜨거운 불길을 견디던 소년은 어느덧 칠순의 나이가 됐다. 힘이 닿는 마지막 날까지 지금의 자리를 지킬 것이라며 환하게 웃어 보이는 그에게서 '일'에 대한 사랑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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