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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을 품은 돌담길을 찾아 떠나는 경북 여행

by 그냥정보주는사람 2022. 11. 5.

소소하게 떠나는 경북 여행

우리나라에서 경북지역만큼 조선시대의 전통한옥 형태를 잘 보존하고 있는 곳도 드물 것이다. 이러한 전통한옥과 함께 우리 주변에서 사라져 가는 아쉬운 것 중 하나인 돌담길이다. 시커먼 돌을 덮고 있는 이끼, 돌담을 온통 감싸고 있는 담쟁이넝쿨까지, 굽고 좁다란 돌담길의 운치에 매료될 마음만 준비되어 있다면 지금 가벼운 마음으로 떠나보자.

돌담길 사진
경상북도 군위의 돌담길 사진

 

1. 육지 속 제주도 군위 한밤마을

대구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아늑하고 고즈넉한 마을이 있다. 자동차로 팔공산 순환도로를 타고 한참 달리다 보면 삼존석굴을 지나 큰 마을이 나타난다. 바로 한밤마을이다. 아름다운 돌담길 따라 나뭇잎 밟으며 천천히 걸으며 마을의 내력과 훈훈한 인정, 많은 볼거리들이 두서없이 마중 나오는 마을이다.

 

한밤마을은 '육지 속 제주도'로 정평이 나 있다. 마을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팔공산이 쏟아낸 바위와 돌돌이 빚어낸 걸작인 돌담이 보인다. 한밤마을은 집성촌이 아니기 때문에 대부분 민초들이 살던 초가집의 울타리를 헐어내고 강돌을 차곡차곡 쌓아 돌담을 만들었다. 당연히 돌담도 직선이 아니라 구불구불하고 폭과 높이도 제각각이라 개성미가 듬뿍 묻어난다. 돌담길은 크게 세 곳에서 진입할 수 있다. 미로처럼 구불구불하지만 어느 곳으로 들어가든 한 바퀴를 도는 구조다. 넓었다가도 사람 몇 명만이 지나는 길로 좁아지기도 한다.

 

한밤마을 돌담길은 남천 고택, 부림홍씨종택, 동천정, 경의재, 애연당 등 돌담 안에 숨은 무수한 고택과 재실들을 엿보는 문화유산 산책로이기도 하다. 집들은 상매댁, 윤이실댁, 오천댁, 원기댁, 성천댁 등 그 집 안주인의 출신지를 딴 택호로 불린다. 이러한 고택을 벗 삼아 돌담길을 걷고 있자니, 조용하고도 한적한 풍경들에 마치 조선 선비가 된 양 저절로 느긋한 여유가 생긴다.

 

한밤마을 여행길에 빼놓을 수 없는 볼거리 중의 하나는 바로 즐비한 문화유산들이다. 대율 1리 골목길에 석불입상이 있고, 윗마을 남사리 학소대 절벽엔 석굴사원 삼존석굴이 있다. 계곡 위 가까운 곳에 최근 복원한 양산서원, 경재홍로의 충절을 기려 세운 정자 척서정도 볼만하다.

 

2. 세월 흔적 고스란히 담은 성주 한개마을

담쟁이덩굴이 멋스런 돌담 너머로 마을의 고즈넉한 풍경과 함께 시야에 들어온다. 경북 성주군에 위치한 한개마을이다. 동네 어귀에 들어서니 풍수를 모르더라도 배산임수를 고려한 마을 지세가 단번에 눈에 들어온다. 북쪽 영취산을 중심으로 좌우로 산이 둘러싸고 있고 중앙의 구릉지에 마을이 들어서 있으며, 마을 앞쪽으로는 낙동강 지류인 백천이 흐르고 있다.

 

마을 입구에서 시작하는 돌담길은 네 갈래로 자연석에 황토를 발라 쌓아 올린 토석담이 미끈한 곡선을 이루고 있다. 대를 물리며 살아온 성산 이 씨의 삶의 터전이어서 인지 담장 하나에도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담장 밑으로 예전의 풍치를 그대로 담고 있는 이끼가 위쪽에는 수시로 정비한 기왓장들이 한개마을의 전통과 역사를 그대로 말해주고 있는 듯하다.

 

한옥과 외부를 연결하는 구불구불 이어지는 돌담을 따라가다 보니 '하회댁' 이란 택호가 붙은 전통 한옥이 잇따라 모습을 드러낸다. 마을에서 가장 오래된 전통 한옥인 하회댁은 현재의 종부가 안동 하회마을에서 시집왔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경상북도 문화재로 지정된 7채의 전통 한옥은 지나가는 여행객이 살며시 들어가 살펴보아도 마다하지 않는 열린 공간이다. 게다가 한개마을의 돌담은 높지도 낮지도 않아 발돋움하면 담 너머 풍경이 정겹게 다가온다. 텃밭에서 채소를 뽑고 사랑채 대청마루에서 도란도란 이야기하는 모습은 한개마을 돌담 너머로 볼 수 있는 도시에선 잊힌 정다운 풍경이다.

 

3. 물에 떠 있는 연꽃을 닮은 예천 금당실마을

마을 앞으로 금천곡이 흐른다. 마을 뒤쪽에는 오미봉이 있고 마을 양쪽과 앞으로 각각 국사봉, 옥녀봉, 백마산 등이 있다.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는 분지형 지형이다. 형태가 물에 떠 있는 연꽃을 닮아서 금당이라 이름 지었다 한다.

 

금당실마을 입구를 들어서면 우선 고택과 구불구불 얽힌 돌담길이 시선을 끈다. 돌담 길이만도 8km, '골목에서 길 읽어버리지 않게 조심하라.'는 말이 실감 날 정도다. 집집마다 가옥의 구조도 다르고 형태도 다르니, 골목골목 흙돌담길을 따라 걷는 재미에 어느새 푹 빠지게 된다.

 

볏짚과 황토를 이용해 차곡차곡 쌓아 올린 돌담은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며 마을 깊숙이 이어진다. 금당길, 배나무길, 구장터길, 나무지게길, 은행나무길, 동촌길, 고택길, 방송재길, 고인돌길 등 말 그대로 '길천지'다.

 

아담한 돌담 옆으로 덕용재, 진사당, 금곡초당, 호미당, 광서당 등 한옥미와 조경미가 돋보이는 고택이 고즈넉하게 앉아 있다. 기와와 흙, 돌, 나무로 지어진 한옥의 지붕과 처마, 기둥, 서까래 등이 만들어 내는 곡선과 직선의 조화가 절묘하다. 거기에 소나무와 대나무, 배롱나무 꽃까지 더해져 옛날 선비들의 화폭에 많이 담겼을 법한 풍경이 눈앞에 펼쳐진다.

 

돌담길을 따라 마을 서쪽으로 가면 금당실 마을을 수호신처럼 지키고 있는 약 800m에 이르는 울창한 소나무 숲도 빼놓을 수 없는 볼거리다. 금당실 송림은 내륙지방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소나무 방풍림으로 그 속에서 있으면 어느새 몸도 마음도 한결 가벼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