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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겨운 경상북도 영덕 영해만세시장 둘러보기

by 그냥정보주는사람 2022. 10. 1.

만세 소리 울려 퍼지던 그곳

바다 내음이 물씬 풍기는 시장에 들어서자 길거리 음식을 앞에 두고 정답게 일상을 나누는 상인과 손님이 보인다. 해산물부터 잡화까지 없는 게 없는 시장의 골목골목을 만날 때면 마치 보물을 찾은 것처럼 반가워진다. 경상북도 독립운동의 중심에서 영덕의 랜드마크로 자리 잡은 '영해만세시장'을 찾았다.

 

영덕 영해만세시장의 사진
영덕 영해만세시장의 모습

 

1. 언제나 반가운 장날의 풍경

펄떡이는 활어의 생생한 몸짓, 즉석에서 회 뜬 미주구리 한 점, 골목마다 퍼지는 고소한 전 굽는 냄새, 이웃처럼 다정한 상인들, 영해만세시장은 '사람 사는 맛'을 느낄 수 있는 전통시장이다. 장날이면 이곳은 전국 각지에서 찾아온 이들로 북적인다. 늘 그랬듯이 익숙하게 장을 보러 나온 주민부터 입에 꽈배기를 문채 할머니 손을 꼭 잡은 어린이까지, 모두가 시장의 활기를 더하는 '귀한 손님'이다. 영덕 터미널과 블루로드 인근에 있어 여행을 왔다가 들른 관광객도 적지 않다. 입구 양쪽으로 각각 생선 노점과 과일 노점이 펼쳐진다. 각양각색 모양에 눈길이 절로 가는 전통 과자, 갓 구워져 쏟아지는 노란 알밤, 파릇한 모종과 꽃 화분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점점 들뜨기 시작한다.

 

2. 영덕 앞바다에서 방금 잡아온 해산물

영해만세시장은 1965년에 문을 연 후, 2002년 시장 현대화사업을 통해 지금의 모습을 갖췄다. 5000m² 면적의 널찍한 시장에는 150여 개의 점포가 둥지를 틀고 있다. 상설시장으로 운영되는 이곳의 장날은 5일과 10일로, 매달 16일은 쉬어간다. 신선한 해산물로 유명한 시장인 만큼 그 규모와 품질이 남다른데, 특히 생선 노점 골목의 해산물은 방금 막 앞바다에서 건져 올린 것처럼 신선하다. 오징어, 갈치, 고등어, 복어, 김장용 보리새우 등 선택할 수 있는 종류도 다양하다. 시장 안쪽에는 '미주구리' 전용 상점 골목이 형성돼 있다. 미주구리란 '물가자미'의 사투리로, 고소한 맛과 사계절 잡히는 특성 덕분에 영덕 군민의 오랜 사랑을 받아왔다. 막 썰어놓은 미주구리 회의 오독오독한 식감을 즐기는 손님의 입에서 탄성이 터져 나온다.

 

3. 정다움으로 물든 상인들

예로부터 영해만세시장은 안동, 영양, 청송 등 내륙 지방에 수산물을 공급하던 곳이었다. 그래서인지 지금도 유독 다양한 지역의 사람들이 모인다. 오랜만에 만난 상인과 손님들은 마치 어제 만났던 것처럼 수다 삼매경에 빠진다. 47년간 향촌 젓갈을 운영해온 이명덕 대표는 시장이 '집' 같다고 말한다. 반평생 한 곳에서 장사를 해왔으니 함께 한 시장 사람들도 식구나 다름없다. 영덕 앞바다에서 공수해 손수 담근 후 4~5개월 숙성시킨 꽁치 젓갈이 이곳의 주력 상품이다. 그 맛을 잊지 못한 손님들이 자연스레 단골이 된다며 흐뭇한 표정으로 젓갈단지를 쓰다듬는다. 

 

골목을 돌자 유쾌한 웃음소리가 발길을 붙든다. 웃음소리의 근원지는 바로 꽁치 젓갈, 멸치젓갈, 새우젓갈, 액젓 등 다양한 젓갈류를 판매하는 '영덕할매젓갈' 가게이다. 울산, 부산 등 멀리서도 찾아오는 단골이 모두 자신의 팬이라 말하는 김선자 대표는 주변 상인과 고객에게 분위기 메이커로 통한다. 큰 대야에서 가득 떠낸 한 국자에 더해지는 맛깔나는 설명에서부터 깊은 자부심이 느껴진다.

 

산길제과의 박춘화와 김학출 부부는 53년째 같은 자리에서 빵 장사를 해왔다. 오랜 내공이 들어간 햄버거, 찹쌀떡 등의 간식이 맛과 추억을 동시에 선물한다. 이곳의 인기 메뉴는 초록색 색소를 입혀 만든 카스테라이다. 정식 명칭이 없어 손님들 사이에서는 '초록 빵'으로 통용되는데 다른 지역에서 택배 주문이 들어올 정도로 인기가 많다. 최근 코로나19로 인해 시장 방문객이 많이 줄어든 상황 속에서도 상인들은 하루빨리 예전처럼 활기를 되찾길 바라며 웃음을 잃지 않는다.

 

4. 어제의 장터 그리고 오늘의 시장

시장을 모두 둘러본 후 시장 로터리에 있는 영해 '삼일팔만세운동기념탑'으로 향한다. 태극기를 들고 '독립 만세'를 외치던 이들의 조각이다. '영해장터'로 시작한 이곳은 만세운동 이후 '영해만세시장'으로 불리게 되었다. 영해는 삼국시대, 고려, 조선에 걸쳐 일제의 침탈을 빈번하게 겪은 곳으로 민족에 대한 남다른 애국심을 품고 1919년 삼일운동에 참여했다. 100년이 넘는 세월이 지났지만 영덕 군민은 계속해서 그때를 기억하고자 한다. 시장 근처에 '영해 삼일 의거탑'을 세워 그들의 넋을 기리고 있으며 해마다 4~5월에는 '만세'시장의 의미를 되새기면서 영해 독립만세 의거 문화제를 개최한다. 희생을 무릅쓰고 일제에 항거했던 이들의 숭고한 뜻이 여전히 영해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세월과 함께 장터는 시장이 되었고 그 안의 모습도 변했다. 하지만 100년 전 장터에서 만세를 부르던 이들이 남긴 정신은 오늘도 여전히 생생하게 살아 숨 쉰다. 어제의 장터와 오늘의 시장이 함께하는 곳이 바로 영해만세시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