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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문화로 세상을 누빈 김해자 선생님

by 그냥정보주는사람 2022. 9. 28.

국가무형문화재 제107호 누비장 김해자 선생

방황하던 젊은 날, 우연한 기회로 누비를 알게 됐다. 수행에 가까운 오랜 바느질은 행위 자체로 큰 기쁨을 주었다. 1996년 국가무형문화재 제107호 누비장으로 지정된 김해자 선생의 이야기다. 누비를 정착시키기 위해 가장 경주답다고 알려진 남산 자락으로 온 지도 벌써 20여 년, 그는 오늘도 경쾌하고 신중한 바느질로 세상을 누빈다.

 

누비 옷을 만들고 있는 사진
누비장 김해자 선생님의 손길

 

1. 최초의 누비장이 되기까지

누비는 옷감의 보강과 보온을 위해 옷감의 겉감과 안감 사이에 솜, 털, 닥종이 등을 넣거나 또는 아무것도 넣지 않고 안팎을 줄지어 규칙적으로 홈질해 맞붙이는 바느질 방법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면화가 재배된 이후 적극적으로 활성화되어 일반인들도 널리 사용했지만, 재봉틀이 등장한 후에는 거의 맥이 끊겼었다.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듯했던 문화를 발견하고, 다시 잇고자 결심하 것이 바로 김해자 선생이었다.

 

거의 100년간 끊어졌던 문화를 되살리는 것이 결코 쉽지 않았을 터이다. 선생은 박물관을 다니며 발품을 팔기 시작했다. "누비를 20대 중반에 시작했으니 벌써 40년에 가까워졌네요. 처음 시작할 당시에는 거의 사라지고 있는 문화였기 때문에 배울 곳은 물론, 참고할 작품도 거의 없었어요. 그래서 박물관에 전시된 옛날 누비옷을 보며 연구하고 따라 만들었지요." 그의 열정은 '누비장'이라는 새로운 분야를 만들어내기 충분했다. 그는 1996년 최초의 누비장으로 선정되었으며 5년 후 경주로 거처를 옮겼다.

 

참 많은 관심을 받았던 때였습니다. 당시에는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누비옷을 모두 판매했기 때문에 취재진에게 보여줄 옷도 없었어요. 누비장으로 지정될 당시에는 창녕에 있다가 5년 후에 경주로 왔어요. 누비가 기능을 넘어선 하나의 정신문화인만큼, '한국 정신문화의 수도'인 경주에서 이어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2. 눈에 보이지 않는 가치를 잇다

곱게 염을 한 저고리부터 푸른색의 현대복까지, 시대를 아우르는 누비옷의 다양한 디자인이 눈에 띈다. 누비장은 처음 누비를 시작할 때부터 세계 시장에서의 가능성을 생각했다고 말한다. "누비는 가볍고 인체에도 건강한, 굉장히 과학적인 옷이에요. 세계 시장에 나가도 하이패션으로 성공할 수 있겠다는 직감이 왔어요. 인체에 이롭고, 자연스럽고, 세탁하기 굉장히 좋은 장점을 응용해 현대복으로도 발전시켰습니다."

 

누비장의 손길이 닿는 옷을 입어보니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듯 가볍다. 살에 닿는 면 또한 거친 부분 하나 없이 매끈하다. "한 땀, 한 땀 옷을 만들면서 입는 사람의 건강을 염원합니다. 그런 마음이 담기다 보니, 어떨 때는 누비가 하나의 종교 행위처럼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그는 누비 안에 담긴 우리의 정신적 가치를 잊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누비는 굉장한 무아지경에 들어가야 지속할 수 있는 행위예요. 반복되는 과정 끝에 완성된 작품에는 우리 민족 고유의 색깔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누비는 단순한 바느질이 아닌, 정신문화를 이어가는 행위입니다.

 

3. 오로지 좋아하는 마음

지난 20여 년간 누비를 배우려는 사람들에게 아낌없이 기술을 전수했지만 많은 이들이 금방 포기했다. 첫째는 경제적인 어려움, 둘째는 끈기 때문이었다. "좋아하는 마음으로 남을 위해 베풀 수 있는 사람들이 끝까지 함께 합니다. 실제로 저에게 남은 제자들은 정말 최선을 다해 꾸준히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렇게 한마음 한뜻으로 모인 회원만 40여 명이다. 그들의 작품을 바탕으로 2년에 한 번씩 진행하는 유물 재현전은 올해로 벌써 8회째를 맞이했다. "신제품이 있어야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이어갈 수 있어요. 지금은 묻혀있던 작품을 재현하는 것에 추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한편 누비장은 누비 교화서를 만들고 누비 명상 프로그램을 기획하는 등 누비의 대중화를 위해서도 물심양면으로 노력하고 있다. "소비층이 누비의 가치를 깨닫고 인정하도록 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우리 것보다 외국 것에 우호적인 태도를 보입니다. '어떻게 하면 대중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서 문화를 알릴 수 있을까' 하는 것은 제게도 큰 과제입니다." 그는 누비 공방에서 간단한 체험 재료를 구입하면 누구나 쉽게 체험해볼 수 있다며, 보다 많은 사람들이 우리 고유문화에 조금 더 관심을 갖기를 독려했다.

 

'누비다'라는 말에 '달린다', '뛴다'라는 의미도 포함되어 있다. 왜 바느질을 하는 것에 '누빈다'라는 이름이 붙여졌는지 함께 생각해 볼 사람이 많아지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