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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산시 임당동 고분에서 삶을 돌아보다

by 그냥정보주는사람 2022. 9. 27.

고분군 사진
고분을 보면 왠지 힐링이 되는 기분이 든다

 

1. 지친 일상에서 발견한 고분군

여행은 때때로 의도치 않게, 화려하지만은 않게 잔잔히 우리의 일생에 젖어 들어올 때도 있다. 최근 힘든 일이 많았다. 최선을 다한 일이 무위로 그치며 의도치 않게 주위 사람들로부터 오해를 샀다. 위로를 받고 싶어 핸드폰 전화번호부를 열어 친구를 찾았지만 계속되는 코로나19로 인해 그네들의 삶도 무척 고단했다. 서로의 삶을 몇 마디 말로 어쭙잖게 위로하고 전화를 끊을 수밖에 없었다. 많은 고민과 생각들을 품고 살던 중 우연히 영남대학교에 볼일이 있어 근처를 걷다가 임당동 고분을 지나게 되었다. 맑은 파란 하늘 아래 초록빛 잔디를 보니 왠지 그곳을 걷고 싶었다.

 

임당동 고분군은 화려한 곳이 아니다. 불국사와 같이 눈을 매료시키는 화려한 예술작품도, 경복궁과 같은 웅장함도 없다. 안내 표지판을 보니 이곳은 압독국의 군장들의 것으로 추정되는 인물들의 무덤이라고 한다. 압독국은 역사를 전공한 나에게조차 너무나 생소한 나라다. 자세히 읽어보니 현재 경산지방에 있었던 소국 중 하나로 신라가 본격적인 중앙집권 국가로 발전해 나가기 전, 신라에 복속되었던 국가라고 한다. 무덤의 크기가 제법 크고, 발견된 부장품들도 적지 않은 것으로 바아 이 군장 들은 살아생전 적지 않은 권세를 누렸을 듯하다. 하지만 살아생전 부귀영화를 누렸을지라도 결국 덩그러니 무덤만 남긴 채 그들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여러 가지 일로 위축돼있던 나는 이름도 잘 알려지지 않은 조그마한 국가 압독국에 왠지 모를 동질감을 느꼈다.

 

2. 시간의 흐름 속 '늘 같은' 자리에

고려 말 유학자였던 야은 길재는 옛 고려의 수도 개성을 돌아보며 '오백 년 도읍지가 산천은 그대로이나 인걸이 사라졌으며 그 장구했던 태평세월이 꿈인 것 같다'라는 감상평의 시를 남겼다. 나는 야은 길재가 느꼈던 풍수지탄의 심정을 느꼈다. 아무것도 가져가지 못할 인생에 무엇을 찾아 그렇게 아등바등 살아왔는지, 또 살아가야 하는지 무덤에 누운 자들에게 물어보고 싶었다. 이들은 과연 정답을 알고 있을까? 무덤에서 시선을 돌리니 잘 닦인 도로, 높게 솟은 아파트, 내달리는 자동차들이 시선에 들어왔다. 무덤의 주인들은 아주 오랫동안 저 아래를 내다보고 있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은 긴 시간 동안 변화하는 풍경을 바라보면서 거대한 시간의 흐름을 느꼈을 것이다.

 

역사가 E.H.카는 '역사란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했다. 임당동의 고분들은 그렇게 나에게 인생과 시간에 대한 이야기를 읊조려주었다. 그리고 결국 이 대화의 끝에 나의 고민도, 우리 청춘의 서글픔도, 시대의 아픔도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미국 그랜드캐니언의 절벽 앞에 서면 자연의 위대함과 거대함에 인간 존재의 나약함을 깨닫고 겸손해진다고 한다. 나는 묘하게 그러한 감정을 임당동 고분을 바라보며 느꼈다.

 

3. 따스하게 채워진 에너지

한편 서글픈 생각도 들었다. 부귀영화를 누렸던 이 군장들도 결국 흙으로 돌아가 버렸다는 것이다. 그때 길모퉁이에서 한 가족이 반려견을 데리고 맞은편에서 걸어왔다. 이 고분군의 주인들은 이제 역사가 되었지만 그들이 남긴 이 무덤은 이제 후대의 사람들에게 편안한 안식처이자 바쁜 현대인들에게 잠시 여유를 주는 공간이 되었다. 나도 이런 사람이 되고 싶다. 역사에 이름을 남기는 거대한 위인이기보다는 임당동 고분처럼 잔잔히 주위 사람들의 삶에 잠깐의 휴식이 되어주며, 산다는 것이 그렇게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날 나는 임당동 고분군에서 뜻하지 않은 힐링을 마주했다. 과거와 현재가 어울려 있는 이곳에서 나는 고민의 무게를 한껏 덜 수 있었고 살아갈 힘을 얻었다. 이곳에서의 여행은 잔잔하고 따스하게 나의 삶에 새로운 에너지를 채워주었다.

 

여행할 때 같은 곳을 여러 번 방문하는 것도 의미가 있다. 같은 공간임에도 마음가짐에 따라 느낄 수 있는 풍경과 이야기가 다르기 때문이다. 내가 힐링을 얻은 임당동 고분군도 누군가에게 또 다른 의미로 다가오는 공간이 되길 희망한다. 지하철역에서 그리 멀지 않고 짧은 시간에 둘러볼 수 있다. 일상이라는 사막을 횡단하다 지친 이들이 잠시 들러, 삶을 다시 엮어갈 잠깐의 오아시스가 되었으면 한다. 그리고 나중에 다시 이곳을 방문할 예정이다. 그때 이 임당동 고분이 나에게 들려줄 이야기는 또 다른 내용으로 가득할 것이다.